▥ 에스겔의 예언의 말씀이다.
18:21-28
18:21-28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악인도 자기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키니
너희가 나의 모든 규례를 따르고 공평과 정의를 행하면
나는 죽지 않고 살 것이다.
22 그의 모든 죄는 더 이상 기억되지 않을 것이며,
그가 행한 의로 말미암아 살리라
23 나는 악인의 죽음을 정말 기뻐합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악인은 자기가 가던 길을 떠나 돌이켜 살게 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24 의인은 자기의 독선을 버리고 돌이켜 악을 행하되
나쁜 놈들이 하는 역겨운 짓을 다 흉내내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가 행한 모든 정의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저지른 배신과 저지른 죄 때문에 죽을 것입니다.
25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집이여, 들어라!
내 방식이 공평하지 않다는 건가요?
내 방식이 공평하지 않다는 건가요?
당신의 길이 오히려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26 의인이 독선에서 돌이켜 죄악을 행하면
그것을 위해 죽을 것이다 그는 그가 행한 불의를 위해 죽을 것이다.
27악인이라도 자기가 행한 죄에서 돌이키니
공평과 정의를 행하면 그가 그의 생명을 구할 것이다.
28 자기의 모든 죄를 기억하고 돌이켜 떠나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
”
주님의 말씀.
◎ 하나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b-26
5:20b-26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0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당신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21 “살인하지 말라. 범인은 재판에 회부될 것입니다.
’
’
너희는 노인들에게 한 말을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형제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에게 “바보!
”라고 말하는 사람은 최고 위원회에 넘겨질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최고 위원회에 넘겨질 것입니다.
“바보!
”라고 말하는 사람은 불타는 지옥의 자비를 받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불타는 지옥의 자비를 받게 될 것입니다.
23 그러므로 너희가 예물을 제단에 드릴 때에
네 형제가 네게 원망할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십시오.
그런 다음 돌아와서 선물을 제공하십시오.
25 법정으로 가는 길에 고소인과 재빨리 타협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검사가 당신을 판사에게 넘길 것입니다.
판사는 당신을 감옥에 넘겨주고 감옥에 넣을 것입니다.
26 나는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합니다.
마지막 한 푼도 지불할 때까지 절대 그곳에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
”
주님의 말씀.
◎ 그리스도, 당신을 찬양합니다.
오늘의 명상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신약에서 자주 언급되며 유대교의 율법을 대표합니다.
서기관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엄격히 지켜 의롭게 되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은 성전의 제물과 함께 그들의 신앙생활의 중요한 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가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그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설명합니다.
예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 더 광범위합니다.
생명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그를 “바보, 바보”라고 부르는 것은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제사가 중요하지만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화해해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넘어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은 계명과 법도를 어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겉으로 보이는 계명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계명이 가리키는 대로 지키라는 명령처럼 들린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는 외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내적인 원한이나 미움도 포함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하나님 말씀의 내적 의미를 보아야 한다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가 외적인 것을 중시했다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의는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를 따르는 태도입니다.
(허규 베네딕트 신부)